같은 대학교 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은 대학원생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어도 대학교 학칙에 따라 별도의 정학 처분을 내린 것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이는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의 증명책임 정도가 다르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서울대 대학원생 A씨는 2018년 6월 학교 후배인 서울대에 재학중인 대학생 B씨와 새벽 각자 회식을 마친 뒤 B씨가 술에 취하자 모텔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A씨는 같은 날 오전 B씨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잠을 잔 뒤 B씨에게 입맞춤을 하고 신체특정부위를 만지는 등 성행위를 시도했습니다. 이후 B씨는 약 일주일 뒤 자신이 취해 있을 때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A씨가 성폭행 또는 성추행을 했다는 취지로 서울대 인권센터와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됩니다.


검찰은 A씨가 성행위를 시도했을 때 B씨가 5시간 정도 잠을 잔 후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온 상태였던 만큼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되지 않는다며 A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서울대 인권센터는 A씨의 행위가 학교 규정에 따른 성희롱 내지 성폭력에 해당한다고 보고 서울대에 정학 12개월 징계를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대는 A씨에게 정학 9개월의 처분을 내리게 됩니다.


이에 반발한 A씨는 서울대 총장에게 재심의를 요청하였지만 서울대는 재심의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결국 A씨는 무혐의 처분을 받은 만큼 자신의 정학 처분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형법 제298조에서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강제추행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1심 법원은 "A씨는 B씨의 묵시적 동의하에 신체접촉 행위를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징계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징계사유가 있음을 전제로 한 정학 처분은 실체상 하자가 있어 무효"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이어 "검찰도 A씨에게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라고 하여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2심은 달랐습니다. 2심은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지도이념과 증명책임, 증명의 정도 등에서 서로 다른 원리가 적용된다"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2심은 "징계사유인 성희롱 및 성폭력 관련 형사재판에서 이같은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확신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소사실에 관해 무죄가 선고되었다고 해서 민사소송에서 징계사유의 존재를 부정할 것은 아니다"라며, "서울대 측의 학칙, 학생 징계 절차 등에 관한 규정, 인권센터 규정 등을 종합할 때 9개월의 징계 처분이 학교 내부 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졌으며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하였습니다.


특히, 2심은 "만취한 상태에서 다섯시간 정도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서 양치를 했다고 해서 곧바로 주취상태에서 벗어났다고 단정할 수 없고, 만취상태에서 잠들었다가 잠깐 깨어나 술에 계속 취한 상태로 다시 잠드는 것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짚으면서, "검찰의 무혐의 처분은 B씨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할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무혐의 처분사실만으로 이 사건 징계사유 존부 판단에 필수적인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부연하였습니다.


아울러 대법원도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에서 사실의 증명은 추호의 의혹도 없어야 한다는 자연과학적 증명이 아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험칙에 비추어 모든 증거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때 어떤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는 것이면 충분하다"며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증명의 정도 등에서 서로 다른 원리가 적용된다. 수사기관에서 무혐의 처분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 A씨의 행위가 서울대 인권센터 규정에 정해진 ‘성희롱’에 해당하므로 학생 징계 절차 규정에 따른 징계사유가 존재한다는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라고 밝히면서 A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하였습니다.


한편, 서울대학교 인권센터는 "성희롱을 판단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점은 행위의 의도나 고의성보다 그 행위가 상대방에게 미친 영향과 결과"라면서 "합리적인 피해자의 관점에서 혐오감과 수치심을 느낄 만한 성적 언행이면 성희롱이 될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민사책임보다 엄격한 증명력이 요구되는 형사책임의 성격을 고려하여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다고 하더라도 민사상 대학 징계 처분을 내린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 판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