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밀수 혐의로 수사를 받던 피의자가 도피생활을 위해 지인에게 은신처와 차명 휴대전화 제공을 요청한 것이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피고인은 2021년 태국으로부터 마약을 밀수해온 혐의로 수사를 받던 도중 10년 넘게 알고 지낸 지인에게 은신처와 차명 휴대전화 제공을 부탁하였다. 이로 인해 피고인의 지인인 A 씨는 피고인을 자신의 주거지에서 생활하게 하고, A 씨의 지인인 B 씨의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하여 피고인에게 제공하였다. 또한 A 씨의 주거지로 찾아온 수사관들에게 본인은 피고인의 연락처를 모르고 피고인과 연락하려면 다른 사람에게 연락 해봐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며 피고인을 도피시켰다.

    이에 원심은 피고인이 자신의 도피생활을 위해 A 씨에게 부탁한 행위들이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형법 제 151조가 정한 범인도피죄에서 ‘도피하게 하는 행위’란 은닉 이외의 방법으로 범인에 대한 수사, 재판 및 형의 집행 등 형사사법의 작용을 곤란 또는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범인이 타인으로 하여금 범인도피죄를 범하게 하는 경우와 같이 방어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을 때에는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할 수 있으나, 방어권 남용의 경우 범인을 도피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목된 행위의 태양과 내용, 범인과 행위자의 관계, 행위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 형사사법의 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성의 정도 등을 모두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 씨가 피고인에게 은신처와 차명 휴대전화를 제공한 행위가 “A 씨가 피고인과 10년 이상의 지인으로서 피고인의 부탁을 들어준 것일 뿐 그 이상으로 도피를 위한 인적 · 물적 시설을 미리 구비하거나 조직적인 범죄단체 등을 구성하여 역할을 분담하진 않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는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보기 어려운 통상적인 도피의 한 유형으로 보여 지고, 수사관에게 거짓으로 피고인에 대한 정보를 진술함으로써 그 결과 피고인이 도피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의사나 도피의 결과를 형사피의자로서의 방어권 남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하였다.